사하라는 왜 초원이 되었고 다시 사막이 되었나 – 아프리카 습윤기의 과학
현대인의 눈에 사하라는 ‘불모의 사막’으로 보이지만, 고기후학(Paleoclimatology)의 증거는 이 지역이 반복적으로 습윤기와 건조기를 오가며 극적인 환경 변화를 경험해왔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홀로세 초기에 나타난 ‘아프리카 습윤기(African Humid Period, AHP)’는 사하라가 거대한 초원과 호수로 뒤덮였던 시기로, 인간 정착과 문명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위성 분석, 고분지층 퇴적물, 동위원소 지표 등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하라의 기후 주기성과 그 메커니즘을 심화 탐구해보겠습니다.
위성 및 고분지층 분석으로 본 ‘Green Sahara’의 증거
사하라 내륙에 위치한 현재의 차드 호수는 겨우 1,000㎢ 남짓한 크기지만, LGM(최종 빙기 최대기) 직후 홀로세 초기에 약 40만㎢에 이르는 초대형 담수호 ‘메가차드(Mega-Lake Chad)’가 형성되었음을 위성 자료와 퇴적 지형이 증명합니다. 이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아랄해, 북미의 그레이트 레이크스를 합친 규모와 비슷합니다.
NASA Landsat과 MODIS 데이터를 통해 재구성된 과거 해안선과 호수 기저 퇴적물 분포는, 이 호수가 사하라 중앙부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며, 퇴적지에서는 풍부한 규조류(diatoms), 탄산염층, 유기물 농축층이 관찰됩니다.
타필랄트(Tafilalt) 분지, 와디 티네르(Wadi Tiner) 등에서 채취한 코어 분석에서는 풍부한 담수 규조류, 석회질 결정, 수생 식물 화분(pollen), 유기탄소(TOC) 비율 증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해당 지역이 장기간 동안 담수 호수 및 하천 생태계를 유지했음을 시사합니다.
밀란코비치 주기와 아프리카 몬순의 상호작용
사하라 지역의 습윤-건조 전환은 지구의 천문학적 궤도 요소에 따라 결정되는 ‘밀란코비치 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자전축 경사(Obliquity)와 세차운동(Precession)은 북반구 여름 일사량을 크게 변화시켜, 북아프리카 지역의 대기열적 경도(thermal gradient)를 증가시킵니다.
그 결과, 서아프리카 몬순이 북쪽으로 500~1,000km 이상 확장되며 사하라 깊숙이 침투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ITCZ(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가 평소보다 훨씬 북쪽으로 이동하여 중부 사하라까지 여름철 강우가 도달했습니다.
기후 모델링 결과
기후 모델(CMIP5, PMIP2)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약 9,000–6,000년 전 사하라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현재보다 약 2~5배 증가했으며, 연간 강수량이 300~400mm 이상으로 유지되어 초지 및 관목 생태계가 유지 가능한 조건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지역은 500mm 이상에 달해 안정적인 담수 호수 및 인간 정착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인류학과 고생태학의 통합적 증거
타실리 나제르(Tassili n’Ajjer), 지브릴 하마다(Hamada de Tinrhert) 등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사하라 지역이 수생 동물(악어, 메기), 대형 포유류(기린, 하마, 코끼리) 서식지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화석 증거 및 고유전학 자료와 일치하며, 당시의 생물상이 오늘날 사하라와는 전혀 다른 생태적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홀로세 습윤기는 인간이 사하라 내륙에 정착하여 목축, 토기 제작, 수렵·채집 경제를 발전시킨 시기로, 이는 아프리카 신석기 문화 형성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특히 동부 사하라에서는 나일 문명과의 교류 정황도 발견되며, AHP가 인류 초기 사회 조직과 이주 경로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AHP의 쇠퇴와 사막화의 비선형성
사하라의 재사막화 과정은 점진적이기보다 불연속적이며 급격한 전환이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해양 퇴적물 코어(예: ODP658C, MD03-2705)에서는 AHP 말기(약 5.5ka BP)에 해양과 대륙의 생지화학적 지표(δ¹⁸O, Alkenone SST)가 급변하며, 수십 년 내에 기후가 급격히 건조화된 정황이 나타납니다. 이는 대기-해양 상호작용 또는 식생-수분 피드백 붕괴가 기후 체계에 트리거 효과를 일으켰다는 가설을 지지합니다.
최근에는 AHP 종료 이후의 사막화가 전적으로 천문학적 요인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활동—예: 초과 방목, 불 사용, 초지 파괴 등—에 의해 증폭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 시스템의 일부로서 사막화 과정에 참여했다’는 생태-기후적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결론 – 기후의 순환성과 인간 문명의 경계
사하라는 정적인 사막이 아니라, 지구 기후 시스템의 주기적 순환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태계를 변화시켜온 공간입니다. 고기후학, 위성 기술, 고생물학, 고인류학의 통합 분석은 우리가 지구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향후 기후 변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 변화 역시 과거와 같은 자연적 순환의 일부일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활동이 그 주기에 얼마나 강하게 개입하고 있는지, 과거의 사하라가 묻고 있습니다.
용어 정리
용어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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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후학 | 고대의 기후를 퇴적물, 화석, 동위원소 등을 통해 복원하는 학문 |
아프리카 습윤기 (AHP) | 약 14,800~5,500년 전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강수량이 급증했던 시기 |
메가차드호 | 과거 사하라 중부에 존재했던 초대형 담수호로, 현 차드호수의 수백 배 규모 |
밀란코비치 주기 | 지구 궤도 요소 변화에 따른 장기적인 기후 변동 주기 |
CMIP5, PMIP2 | 기후 변화 연구에 사용되는 국제 공동 시뮬레이션 모델 집합 |